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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는 끔찍했고 회복은 더 끔찍했다

영화는 무고한 시민 130명의 생명을 앗아갔고 350여명의 부상자를 낸 2015년 11월 13일 파리 연쇄 테러 사건의 아픈 기억을 소환한다.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바타클랑 콘서트홀 테러에서 모티브를 얻은 ‘파리 메모리즈’는, 여성 우주비행사와 가족과의 관계를 다룬 ‘프록시마’(2019)에 이은 앨리스 위노커 감독의 네 번째 장편. 파리 시내 7곳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총기 난사·인질극·폭탄 테러 사건에서 살아남은 40대 여성 번역가가 당시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악몽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내용을 다룬다.     비 오는 저녁의 파리. 비를 피하러 잠깐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미아(비르지니에피라)는 무차별 총격에 휘말린다. 총성이 발사되고 기절하는 미아,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그녀는 그날 저녁의 일을 부분적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미아는 거리와 지하철에서 죽은 사람들의 환영을 본다. 무의식적으로 지워버린 그 날의 일을 기억하기 위해 미아는 다시 현장을 찾는다. 거울의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아는 부모를 모두 잃은 십대 소녀, 친구들을 잃고 총탄으로 다리를 크게 다친 은행가 토마스(베누아마지멜) 등 다른 생존자들과 만남을 이어간다.   영화 초반부 레스토랑에서의 테러 장면은 스릴러에서 보는 총격 신과는 거리가 멀다. 관객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는 미아의 시각을 통해 상황을 감지한다. 연이어 울리는 기관총 소리, 테러범의 발자국, 바닥으로 쓰러지는 희생자들의 신체가 그녀의 시선 안으로 들어올 뿐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미아의 잠재의식 속에서 긴장과 공포로 작용한다. 악몽 속 기억의 편린들을 응시하는 미아의 의식의 흐름을 쫓으며 전개되는 스토리는 많은 부분 기억상실증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 ‘메멘토’를 연상시킨다.     위노커 감독은 “그러나 미아가 이 사건을 겪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을 은연중 제시한다. 미아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아서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토마스를 만난다. 토마스는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미아에게 유머와 위로를 던진다. 아픈 상처를 공유하는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이끌리고 파리를 배회하며 정사를 나눈다.     테러의 충격 이후 아픔을 겪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생존자들을 지켜보며 미아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스스로 위로한다. ‘엘르’, ‘베네데타’ 등의 작품으로 익숙한 벨기에 배우 비르지니에피라가 여주인공 미아를 깊이와 내공으로 연기해 낸다. 김정 영화평론가메모리즈 영화 영화 파리

2023-06-30

파리의 소외된 아시안, 거침없는 욕망의 질주

파리의 동남쪽 끝자락으로 가면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인 13구에 다다른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많은 난민들이 이곳에 정착했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은 이 지역을 ‘차이나타운’이라 부른다. 파리 13구에는 중국도 프랑스도 아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세 여자와 한 남자가 있다. 그들은 사랑으로 얽혀 있는 관계들이다. 파리라는 가장 현대적인 도시, 그 도시 안에서 가장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지역 13구에서 펼쳐지는 네 사람의 사랑 이야기.     대만계 이민자 에밀(루시 장)은 룸메이트 광고를 보고 찾아온 남자 까밀(마키타 삼바)과 즉석에서 캐주얼 섹스를 한다. 그리고 룸메이트가 된 그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까밀은 에밀의 사랑이 부담스럽다. 그는 사랑이 뭔지 모른다. 대신 섹스에만 몰입한다.     32세의 복학생 노라(노에미메를랑)는 외모가 온라인 포르노 스타인 앰버 스위트(제니 베스)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학생들로부터 성적 모멸감을 당한다. 학교를 그만두고 까밀이 일하는 부동산 회사에 에이전시로 취직한다. 까밀은 노라를 원한다. 노라는 까밀과 데이트를 즐기지만 무언가 서로에게 부재하는 것이 있음을 알고 까밀을 떠난다.     노라는 사랑을 원한다. 그러나 사랑이 두렵다. 자신과 닮은 앰버 스위트에게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낀다. 까밀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그 무엇. 두 여자는 서로를 연민한다. 설렘 속 다가온 첫 오프라인 만남에서 키스로 호흡을 불어넣는다. 그러는 사이 까밀은 에밀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다.       쟈크 오디아르드 감독은 ‘위선적 영웅’(1996)과 ‘예언자’(2009) 등의 작품을 만든 거장이다. 그는 주인공들의 누드와 섹스를 모노톤으로 촬영했다. 벌거벗은 몸, 피부의 촉각까지. 무심하면서도 부드러운 그의 렌즈는 소외된 파리지엔느의 섹스와 욕망에 다가간다.       오디아르드의 모노톤은 극도로 현대적인 대사들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가 그리는 현대의 사랑은 대담한 듯 보인다. 그러나 왠지 불안하다. 자기감정에 지독히도 솔직한 네 사람이 각자의 사랑을 찾아가지만 ‘파리, 13구’에는 그들이 갈구하는 사랑은 선뜻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사랑의 대상을 찾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섹스 파트너를 찾는 것일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후 만나는 메를랑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노라의 대담함과 불안함, 그리고 은밀함이 그녀의 연기 안에 살아 있다. 루시 장의 뭉클한 연기 또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파리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다.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외로움이 가려져 있다. 파리와 네 사람의 삶은 끊임없이 충돌한다. 섹스로 시작하고 나중에 관계를 생각한다. 거침없는 그들의 솔직함을 보면 ‘썸타기’는 오히려 시간 낭비다. 파리는 언제나처럼 그리고 여전히 사랑을 믿는 도시이기에.   김정 영화평론가영화 영화 파리

20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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